1960년대 고재봉 사건
강원도 인제에서 근무하고 있던 이득중 중령의 집에 침입한 고재봉은이중령과 부인, 자녀들과 가정부. 총 6명을 들고 있던 도끼로 처참하게 살해한다.- 그 직후 범행 24일만에 서울에서 상인의 신고로 붙잡히게 되는데 조사결과그는 원래 이중령이 관사로 오기 전에 거주하고 있던 박모 중령을 죽이려고 했던거라고진술 하게 된다.- 박중령이 근무하던 시절 관사에서 근무하고 있던 고재봉은 집안에서 어떤 물건을가지고 나가려다 가정부에게 발각되고 이로 인해 징역형을 살게 된다.그후 감옥내에서 박중령을 죽이겠다고 마음 먹고 출소 후 찾아가서 관사내의사람들을 전부 죽이게 되는데 그때 머물던건 1달전에 새로 온 이중령의일가였다고 한다.
1970년대 김대두 사건
1975년 9월경 일주일정도 되는 사이에 평택,양주,시흥,수원등의 4개지역의외딴집에서 일가족이 글로 표현하기도 참혹할 정도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노인 어린이 갓난아기라 할것도 없이 생명이란게 있으면 무작정 죽이는 그런 사건이
벌어진것이다 당시 신문의 1면에는 [야수의 짓] 이라는 기사가 실렸으며 현장에 남긴 단서로경찰은 당시 교도소에서 출소한지 얼마안되는 김대두(당시 25세)를 검거하게 된다.- 피해자들은 두개골이 함몰되거나 전신이 둔기로 인해 처참하게 짓이겨진 상태로숨지게 되며 그중에는 생후 3개월짜리 갓난아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돈이 없어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그가 빼앗은 돈은 모두 포함해서 3만원. 범인 김대두는 사형을 선고받고 다음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1982년 우범곤 순경 사건
1982년 4월 26일에 벌어진 우범곤 순경 총기 난사사건은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세계에서 손꼽힐정도로 짧은시간에 대량의 피해자를 낸 사건으로 기록되어있다.- 1982년 4월 26일 저녁 8시 30분경 경남 의령군 궁유면 저서에서 근무하던
우범곤 순경은 만취상태였다. 그 직후 저서와 예비군무기고에서 수류탄 7발과카빈소총 2정, 실탄 180발을 들고 나와 주민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기 시작했다. 첫번째 희생자는 우체국에서 근무하던 전화교환원이었는데 이걸로 인해 마을은
외부로부터 고립된 상태가 되었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불이 켜진집을 보는대로들어가 닥치는대로 총기를 난사하고 수류탄을 던지며 사람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피해자중에는 생후 1개월된 영아도 있었는데 8시간을 그렇게 마을을 배회하며
사람들을 죽이고 다녔다고 한다. 주민의 신고로 의령경찰서는 뒤늦게 사살명령을 내리고 기동대를 출동시켰지만
이미 우순경은 자취를 감춘뒤였고 다음날인 27일 오전 5시 30분경 평촌리의외딴 농가에 들어가 수류탄 2발을 터뜨려 자폭하게 된다. 추후에 밝혀진 사건 동기는 평소 술버릇이 좋지 않던 우범곤 순경이 내연의 처와말다툼을 벌이고 직장내에서 좌천되는둥 평소의 불만이 한꺼번에 터지면서일어난 우발적인 사건으로 경찰은 결론지었다.
- 이 사건으로 총 56명이 사망하고 34명이 부상.
*1989년 심영구 사건
당시 화성연쇄살인사건으로 언론에는 별로 다뤄지지 않았지만이 또한 대표적인 살인사건으로 꼽기에는 부족함이 없는듯 하다.- 89년 당시 출소를 마치고 나온 심영구는 수중에 가진 돈이 떨어지자금전을 목적으로 범행을 시작하게 되는데 총 9차례에 걸쳐서 서울과성남, 구리 지역을 배회하며 사건을 저지르게 된다.- 이 사건의 대부분은 금전을 목적으로 한 살인이 대부분이지만 평소사진을 무시하던 지인을 단숨에 죽이기도 한 경우도 있었다.- 총 8명이 이 사건으로 인해 사망했으며 3명은 중상을 입었다.
심영구는 누구인가?
1960년 충북 제원에서 태어난 심영구는 포악한 아버지의 학대를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다. 중학교 1학년 때 무작정 상경한 심영구는 구두닦이, 식당 종업원 등을 전전하며 살아가다가 스물여섯 살이던 1985년 강도상해죄로 3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출소 후에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칼을 들고 거리로 나서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심한 폭력에 시달리다 보니 심각한 정서적 문제와 욕구 불만이 축적된 데다가 청소년기에도 우호적이지 않은 생업 현장에서 ‘부정적 사회화’ 과정을 겪었다. 또한 늘 약자 입장에서 무시당하고 갈취 당하고 짓밟혀온 분노와 열등감, 피해 의식이 내면화되어 있었다.
성인이 된 심영구는 술에 의지해 억눌린 욕구와 심리적 불안감을 덜어 내려 했으나 음주 후에는 오히려 공격성과 폭력성이 두드려져 문제만 일으켰다. 범행 과정에 대해서도 목적은 돈이었지만, 피해자를 대하면 찌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일단 한번 찌르고 나면 이성을 잃고 마구 찌르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범죄패턴 : 성남-성남-서울-성남-성남-서울-구리-서울-성남
제1차 범행 : 성남 미장원 강도 상해
3년 6개월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심영구는 취직도 어렵고 마땅히 할 일이 없게 되자 1988년 5월 21일 새벽 1시 성남시 태평동 소재 미장원에 침입, 자고 있던 미장원 원장의 목과 가슴을 칼로 마구 찌르고는 가게에 있던 현금 7,000원을 훔쳐 달아났다. 다행히 미장원 원장은 목숨을 건졌지만 범인의 인상착의를 기억하지 못했다.
제2차 범행 : 성남 골목길 살인
20일 후인 6월 11일 새벽 4시경 심영구는 집 앞인 성남시 신흥동 골목길에서 평소 자신을 무시하던 술집 여주인과 마주치자 칼을 꺼내 마구 찔러 살해했으나 목격자는 아무도 없었다.
제3차 범행 : 서울 관악구 강도 살인
5일 후인 6월 16일 새벽 2시경 심영구는 건축 현장에서 일해본 적이 있어 익숙한 서울 관악구 남현동 거리를 배회하며 범행대상을 물색하던 중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술집주인이 지나가는 게 보이자 뒤에서 다가가 등을 마구 찔러 살해하고는 현금 10만 원을 훔쳐 달아났다. 역시 목격자는 없었다.
제4차 범행 : 성남 골목길 살인
8월 4일 새벽 1시 심영구는 훔친 돈이 떨어지자 다시 범행에 나섰다. 성남시 단대동을 어슬렁거리다 가게문을 닫고 귀가하던 여주인을 발견 3킬로미터 정도 미행하다가 으슥한 골목길에 이르자, 그 여인에게 다가가 등과 어깨를 마구 찔러 살해하고 주머니를 뒤졌으나 돈이 나오지 않자 그대로 달아났고, 역시 목격자는 없었다.
제5차 범행 : 성남 골목길 살인과 차량 절도
3개월이 지난 11월 16일 새벽 2시경, 성남 수진동 길가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하던 심영구는 검은 꾸러미를 들고 가던 50대 남자에게 달려들어 등을 칼로 찔러 살해하였으나 그 검은 꾸러미는 성경책이었고, 피해자는 심야 기도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허탕을 치자 2시간 뒤 귀가하던 중 집 근처에 주차해있던 승용차 창문을 부수고 금품을 훔쳤다.
제6차 범행 : 서울 종로 노점상 강도 살인
일주일 뒤인 11월 23일 밤 8시 반경 서울 종로구 예지동 ‘광장시장’ 앞 길거리에서 범행대상을 물색하던 심영구는 돈을 세고 있던 50대 노점상 아주머니에게 접근, 다짜고짜 칼로 마구 찔러 살해하고 현금 17만 원과 버스 승차권을 훔쳐 달아났다.
제7차 범행 : 구리시 노점상 강도 살인
사흘 뒤인 11월 26일 새벽에는 구리시 토평동 길거리에서 장사를 마치고 귀가하던 57세의 노점상을 쫒아가 칼로 등을 마구 찔러 살해하고 그날 매상이 든 돈주머니를 훔쳐갔다.
제8차 범행 : 서울 종로 살인 후 차량 절취
다음날인 11월 27일 밤 9시 서울 종로구 창신동 소재 한 주차장에서 승용차를 주차하던 29세의 남자 운전사에게 공연히 시비를 건 후에 칼로 가슴 부위를 마구 찔러 살해하고 피해자의 차를 몰고 달아났다.
제9차 범행 : 성남 슈퍼마켓 강도 미수 - 검거
성탄절인 12월 25일 새벽 4시. 심영구는 집 앞 슈퍼마켓에 들어가 혼자 가게를 보던 30대 여주인을 끌어안고 추행을 했으나 여주인이 격렬한 저항을 하면서 소리치자 잠을 자던 여주인의 아들(11세)이 잠에서 깨어 심영구에게 덤벼들었다. 심영구는 칼로 어린아이를 마구 찔렀고, 여주인이 아들을 지키기 위해 격렬히 저항하자 슬리퍼 한 짝을 현장 부근에 떨어뜨린 채 달아났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이 슬리퍼 한 짝을 근거로 범인은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임을 직감, 범인 수색에 나섰고 1990년 1월 22일 마침내 서울 강서구 등촌동 판잣집에 숨어있던 심영구를 검거했다.
심영구 사건의 의미
심영구 사건은 ‘주로 심야에서 새벽 사이에 마구 공격해 살해하고 금품을 훔쳐간다’는 기본적인 모양이 김대두 사건과 흡사하다. 비록 피해 대상과 장소, 범행 도구와 결박 여부 등 방법에서 차이가 나지만 김대두 사건을 제대로 분석해서 ‘범죄자의 어떤 특성이 범행의 어떤 면으로 이어졌는가?’ 에 대한 다양한 답을 구한 뒤 수사 자료로 남겨두었더라면 좀더 일찍 해결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연쇄살인범들은 소설이나 영화와는 달리 학력도 낮고 성격 이상에 사회 적응에도 문제가 있으며, 그리 지능적이거나 뛰어난 기술을 갖지 못했다. 범행을 할 때 자신의 어두운 과거와 범죄 경력, 이상 심리와 욕구들을 감추지도 못한다. 수사 경찰이 시국 치안이나 정치, 승진 등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오직 수사 기법 개발과 사건 해결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춰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수사에 매진한다면, 조기에 찾아내서 검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 사건이다.
*1989~1991년 화성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
가장 유명한 살인사건이면서 결국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은화성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
4년 7개월간 경기도 화성 태안일대에서 일어난 10차례의 부녀자 강간살인사건으로 2003년에는 영화 '살인의추억'으로 다뤄지게 된다.-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스타킹이나 양말같은 피해자들의 의상으로목이 졸린채 살해됐으며 음부에서 복숭아조각 등이 나와서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역대 최대 경찰병력이 동원된 사건으로 기록되었으며 여기에 투입된경찰병력만 연인원 205만명이며 용의자와 참고인을 다 합치면 21280명이라고 한다.
지문대조 40116명, 유전자 DNA 분석 570명, 모발감정 180명의 기록을 남겼다.총 수사기록은 캐비닛 5개 분량.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검거하는데 실패했고 살인사건 공소시효가 15년인우리나라에서는 2006년에 결국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된다.- 유일하게 해결된 사건은 8차 살인사건인데 이는 현장에 남아있던 모발과범인의 모발이 일치해서 해결된 경우였으며 다른 살인사건과는 관련이 없는걸로판명나게 된다.
- 사건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피해자가 모두 여성이다.
② 피해자가 젊은 층에 한정되지 않고 52세(7차)·69세(10차)·71세(1차) 등 다양하다.
③ 피해자의 음부가 크게 훼손되었다(4·6·7·9차).
④ 사건현장이나 피해자의 음부 안에서 정액 또는 머리카락·담배꽁초 등이 발견되었다.
⑤ 피해자의 대부분이 목이 조여 살해되었다.
⑥ 피해자의 국부에서 9개의 복숭아 조각이 나오고, 가슴이 19차례나 칼로 도려질
정도로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대범하다.
- 현재까지 밝혀진 범인의 신원정보
1) 신장은 약 165~170cm정도의 호리호리한 체형
2) 당시 20대 중반의 외모, 현재는 40대
3) 혈액형은 B형
- 현장에서 찾아낸 범인의 유전자 정보는 현재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보관되어 있어서 추후에라도 확인이 가능하다고 한다.
*1993년 지존파 사건
원래 이 조직의 이름이 지존파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원래의 명칭은 '마스칸' 이라고 합니다.
마스칸은 희랍어로 [야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당시 사건을담당한 형사분께서 "야망을 위해 남을 죽이는건 안된다" 라고 생각하셔서대신할만한 단어로 '지존'을 선택했고 세상에는 지존파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993년 7월부터 1994년 9월까지 김기환, 강동은, 문상록, 강문섭, 백병옥, 송봉호이경숙 이렇게 7명으로 구성된 언론에 알려진 지존파의 일원들이 저지른살인사건은 당시 나라를 발칵 뒤집을 정도로 잔혹한 사건이었다.
- 평소 자신들이 돈없고 교육도 못받는둥 여러모로 사회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김기환이 자신의 학교 후배, 교도소 친구등 주변의 인물들을 끌어모아 만들었고그들은 소위 말하는 돈있는 사람들에게 복수를 한다는 생각으로 현대백화점의
고객명부를 입수 범행대상으로 삼게 된다.- 1993년 8월에는 조직에서 이탈한 송봉호를 살해하고 그후에 4명을 추가로 살해총 5명을 살해하게 된다.- 이들은 완전 범죄를 위해 아지트내에 감옥과 시체를 태우기 위한 소각로도
설치했으며 시체를 태울때는 바베큐를 구워서 냄새를 지우려는 치밀함도 보였다.또한 이들은 서로 인육을 나눠먹으며 조직의 단결을 돈독히 했다고 한다.- 1995년 11월 강제로 조직에 참여하게된 이경숙을 제외한 조직원 5명은 전원
사형되었으며 다른 조직원들이 마지막에 참회하고 죄를 뉘우치는 반면 두목인김기환 만큼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회와 가정에 대해서 불만을 토해냈다고 한다.
*1994년 온보현 사건
한창 지존파로 시끄럽던 1994년에 일어난 소위 '살인택시 온보현' 이라고 불렸던 사건.- "내 나이만큼 죽이려고 했다" 라는 발언으로 언론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그는과거 자신이 일했던 택시회사에서 택시를 훔치고 번호판을 위조하게 된다.
그 후 택시를 타고 사람들을 태우고 다니며 2명을 살해하고 지존파가 검거된뒤에자신에게 수사망이 좁혀오자 결국 자수하게 된다.- 경찰에게 조사받는 중에 "지존파와 자신을 비교하고 싶으니 같은 감방에 넣어달라"라는
요구를 해서 형사들을 당황스럽게 했다고 한다.- 법원은 온보현에게 사형을 구형하고 1995년 11월 2일 지존파 일당들과 함께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1996년 막가파 사건
'막가는 인생' 이라는 뜻으로 내건 막가파 사건은 지존파 사건과 비슷하게'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돈많은 사람들은 다 죽이고 싶었다' 라는 최정수가조직원 8명을 모아서 만든 단체가 저지른 사건이다.- 이들은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과 지존파의 사건들을 참고로 해서 범행계획을세우게 되고 주 타겟은 부유층이었다고 한다.- 이 사건이 유명해진건 다름이 아니라 사람을 산채로 땅에 묻어서 죽인이른바 생매장으로 유명해지게 됐는데 이 생매장으로 인해 두명의 여성이살해당하게 되었다
*정두영사건(2000년)
1996년 6월부터 2000년 4월까지 9명의 시민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다. 정두영은 지난 1999년 6월부터 강도행각을 벌이면서 17명을 살상하였다. 정두영은 18세 때인 지난 1988년 불심검문 중인 방범대원을 살해, 11년 간 복역하고 출소한 뒤 곧 바로 절도죄로 붙잡혀 다시 6개월 동안 복역한 뒤 1999년 3월 출소했다. 이후 10개월 동안 16번의 강도 짓을 했고 그 과정에서 9명을 무참히 살해했다. 주로 부산, 울산과 경남지역을 활보하며 살인강도 행각을 벌였고 천안에서 인질강도를 저지르다 체포되었다.
*정남규사건(2004년)
2004년 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13명의 시민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다. 2004년 1월, 경기도 부천시에서 윤기현(11세)과 임영규(10세)를 납치 살해하는 등, 경기도와 서울 일대(주로 서남부 지역)를 돌아다니며 심야에 귀가하는 여성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거나 거주지에 침입하여 살인과 방화를 함께 저지르는 등 연쇄살인 행각을 벌여 당시 언론에서는 '서울판 살인의 추억' , '비오는 목요일밤의 괴담'이라는 등 다소 선정적인 보도를 했다.
2006년 4월 22일에 체포되었으며, 자백에 의해 유영철이 저질렀다고 주장했던 이문동 살인 사건의 진범임이 밝혀졌다. 2006년 6월 7일에 구속 기소되어, 9월 21일에 사형을 선고받았고, 2007년 4월 12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어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이나,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12월을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사형은 단 한건도 집행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유영철사건(2003-2004년)
20명을 연쇄 살인한 범죄자이다. 서울에서 노동일을 하는 부모 사이에 3남1녀 중 삼남으로 태어난 유영철은 중학교 1학년인 14살때 아버지가 지병인 정신분열성 간질환으로 사망하자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서울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공업고등학교 2학년을 다니던 중 절도사건으로 소년원에 수감되어 학업을 중단하고 떠돌이 생활을 했다. 유씨는 21살 때인 1991년 마사지 안마사인 황모씨와 결혼, 11살된 아들까지 두었으나 이후 14차례 특수절도 및 성폭력 등으로 형사입건 되는 등 11년을 교도소에서 보내 사회와 철저히 격리되었다. 2000년 3월 특수절도 등으로 전주교도소에 수감 중 2002년 5월께 부인이 이혼소송을 제기하여 일방적으로 이혼당했으며 이후 말을 하지 않고 대인기피 현상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호순사건(2008년)
충청남도 서천군 출신으로 2009년 1월 24일 경기도 서남부에서 연쇄적으로 여성을 납치하여 살해한 것으로 지목된 범인이다.
2009년 1월 27일에 2008년 12월 경기도 군포시에서 실종된 여자 대학생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후 추가 수사에서 2006년 12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경기도 서남부 일대에서 여성 7명이 연쇄적으로 실종된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처음에는 연쇄 살인을 부인하다 경찰이 증거를 제시하자, 군포 여대생을 포함해 7명을 살해했다고 털어놓았다.
강호순이 살해했다고 밝힌 부녀자는 노래방 도우미 3명, 회사원 1명, 주부 1명, 여대생 2명이었다. 추가로 2009년 2월 17일에는, 2006년 9월 강원도 정선군에서 정선군청에서 근무하던 공무원 윤 모(여성, 당시 23세)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2008년 논현동 고시원 방화 및 살인 사건
2008년 10월 20일 오전 8시 15분 경 D고시원에서 2003년부터 거주하던 정상진(1978년생, 당시 30세)이 논현동의 D고시원에 화재를 일으킨 뒤, 화재연기를 피해 복도로 뛰어나온 피해자를, 미리 준비하고 있던 칼로 피해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찔러 살해 또는 중상을 입힌 사건이다. 이번 방화로 고시원의 세 층이 일부 전소했으며, 피해자는 중국동포 이월자(50세)와 서진(20세)을 비롯해 사망자 6명, 중상 4명, 경상 3명이 발생했다.
[출처] 한국을 뒤흔들었던 연쇄 살인 사건|작성자 체페슈 https://blog.naver.com/hurucin/140155277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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