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을 시찰중인 만슈타인(Manstein)장군과 한스 슈파이델(Dr. Hans Speidel)장군.
만슈타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육군을 이끌었던 장군으로 매우 뛰어난 전공을 세워 오늘날에도 당시의 가장 뛰어난 군사 전략가이자 '기동전의 대가'로
평가 받는다.
본명은 에리히 폰 레빈스킨(Erich von Lewinski), 친척인 만슈타인(Georg von Manstein, 1844-1913) 장군의 양자로 입양된다.
1914년 군사학교를 수료한 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군 생활을 시작하였다.
1939년 9월 독일의 폴란드 침공 당시 룬트슈테트(Karl Rudolf Gerd von Rundstedt, 1875~1953) 장군의 참모장으로 근무했다.
프랑스 침공 당시 만슈타인은 제 38군단을 지휘하며 독일 육군 가운데 처음으로 센(Seine) 강을 건너 파리로 진격하였고, 이러한 전공으로 중장으로 진급하며 뛰어난
야전지휘관으로 떠올랐다.
1941년 6월 시작된 독일의 소련 침공에서 만슈타인은 전격전(Blitzkrieg)을 펼쳐 전쟁 시작 4일 만에 레닌그라드(Leningrad, 지금의 Saint-Peterburg)를 향해 320km를
전진하는 놀라운 기동력을 보였다.
1941년 9월 만슈타인은 룬트슈테트(Runstedt)가 지휘하는 남부집단군(Army Group South)예하의 제11군 사령관에 임명되었고, 1942년의 하계 공세에서 소련군의 방어를
물리치고 세바스토플(Sevastopol)과 케르치(Kerch)등을 점령해 크림(Krym)반도와 흑해 연안을 장악하는 전공을 세웠다.
이 공로로 그는 원수로 진급하였다.
전장의 젊은 병사들을 격려하는 만슈타인 원수
1942년 11월, 30만명의 독일 제6군이 스탈린그라드(Stalingrad, 지금의 Volgograd)지역에 고립되자 만슈타인은 스탈린그라드 작전지구를 관할하는
돈집단군(Army Group Don)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1943년 2월, 제6군이 소련에 항복하자 새로 개편된 남부집단군(Army Group South)의 사령관이 되어 하르코프(Kharkov)와 벨고르드(Belgord)등을 재점령하고
20여개 사단의 소련군을 무찌르는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독일은 병력과 장비의 열세로 점차 수세로 몰렸으며,
만슈타인은 1943년 9월 남부연합군을 드네프르(Dnepr)강 연안으로 철수시켰다.
1943년 7월 벨고르드 남쪽에서 "치타델라" 작전을 지휘하는 에리히 폰 만슈타인 원수. 그의 뒤는 당시 3기갑군 지휘관이었던 헤르만 브라이트 장군(1892-1964)
1944년 3우러 30일 히틀러는 연이은 패배와 계속된 후퇴의 책임을 물어 그를 해임하였다. 종전 이후 그는 전범(戦犯)으로 체포되어 1949년 영국 군사법원에서 18년형을 선고받았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1953년 석방되었다.
1955년 <잃어버린 승리 Verlorene Siege)라는 제목으로 회고록을 출간했다.(출처 : 두산백과)
에리히 폰 만슈타인 장군의 묘
출처 : https://blog.naver.com/yumiun/220314559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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