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폴란드를 침공한 1호 전차와 보병대열
1호 전차(Panzerkampfwagen I)는 1932년 히틀러가 독일의 재무장을 선언한 후 최초로 개발된 전차이다. 1932년부터 라인메탈, 크루프, 헨셀, MAN AG, 다임러-벤츠 등이 5톤 미만의 경전차 개발을 요구받고 개발에 들어갔고 1933년에 이 중에서 크루프사의 설계안이 채택되었는데, 이 설계안은 비밀리에 소련을 통해서 밀수한 영국제 카든 로이드 탱크를 많이 참고한 것이었다. 1937년까지 대량생산된 1호 전차는 주무장으로 7.92mm 기관총 2정이 전부고 탑승인원 2명으로 1939년 2차대전 발발시 이미 전차로서의
의미는 상실한 상태였다.
1938년 10월 독일 뷔르츠부르크(Wurzburg)에서 훈련중인 1호전차 A형 대열.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하는 1호 전차(PzKpfw Ⅰ) B형.
하지만 아직 많은 수(약 1,560대)의 1호 전차가 현역으로 활동 중이었기 때문에 유럽의 전격전에서는 3호 전차와 4호 전차의 보조전차로서 당당히 그 역할을 수행했다. 초기 유럽에서는 독일 전차에 대항할 변변한전차가 없었기에 1호 전차도 나름 보병을 대상으로 지원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독일군의 1호 전차와 2호 전차를 능가하는 성능을 가진 프랑스의 르노 R-35나 샤르 B1 같은 전차들은 전차운용 전술의 부재로 독일군에게 하나하나 각개 격파되거나 제대로 전투도 하기 전에 버려지곤 했다. 유럽 전격전후 남아있던 1호전 차는 모두 개량되서 놀랍게도 종전까지 활약했다.
제2차 세계대전 초반 전격전의 주역인 1호 전차와 2호 전차 대열
1호 전차(Panzerkampfwagen I) A형
A형은 1호 전차의 최초 생산형으로 1934년 6월부터 1936년 6월까지 다임러-벤츠, 헨셀, 크루프 , MAN AG에서 총 818대가 생산되었다. 훈련 및 개발용 전차로 계획되었던 A형은 본래 주력 전차로 사용할 예정이었던 3호 전차의 생산 지연으로 전쟁 초기까지 주력전차로 독일군 기갑부대에서 널리 쓰였다. 제법 빨리 폐기된 편이지만, 1941년 말까지 핀란드 및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도 사용되었다.
베를린에서 시가행진을 하는 1호 전차 A형.
A형과 나중에 생산된 B형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다르다. 4.02m의 짧은 길이와 5.4톤으로 더 가벼운 A형은 4개의 로드휠만 가져 B형과 구분할 수 있는데,
A형과 B형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엔진이다. A형의 크루프 M305 엔진은 힘이 부족했고, B형보다 성능이 떨어졌다.
1940년 5월 10일 프랑스를 침공하는 1호 전차 A형.
1호 전차 B형
B형은 외형상으로 A형과 차이를 구별하긴 어렵지만 로드휠이 5개로 늘어나고 리턴휠이 3개에서 4개로 변경되었다.
엔진은 공랭식 M305 엔진이 수냉식 엔진으로 변경되었기 때문에 차체가 길어질 수 밖에 없었다.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하는 1호 전차 B형. B형은 100마력(75kW) 6실린더 마이바흐 NL38TR 엔진으로 교체되었는데 노상에서 최고 속도 시속 40km로 170km 주행이
가능했다.
1939년 9월 폴란드를 침공하는 1호 전차B형과 2호 전차대열.
1호전차 C형
독일 육군 병기국은 1939년 9월 15일 초대형 수송기 Me321 기간트에 실어 공수작전에 투입할 목적으로 1호전차를 개량할 것을 결정했다. 이 결정에 따라 C형이 탄생했는데, 설계는 크라우스-마파이AG가 담당했다. 전체 무게는 8톤으로 증가했고, 전진 8단, 후진 2단의 변속기로 작동하는 마이바흐 HL45P(6실린더 3800rpm 150hp) 엔진을 장착했다. 로드휠길이는 4.19m로 짧아졌고, 폭은 1.92m, 높이는 1.94m가 되었다. 속도는 시속 79km, 주행거리는 300km로 증가되었다. 무장도 바뀌어 기존 MG-13 기관총 2정을 20mm EW141 기관포와 MG-34 기관총으로 교체했다. 기관포는 -10도 ~ 20도의 부앙각을 가졌다. 장갑은 전면 30mm, 측면 및 후방이 20mm로 늘어났고, 바닥과 상부는 10mm였고, 장갑에 경사진 부분은 거의 없었다. 현가장치는 리프 스프링에서 토션바로 바뀌었고, 로드휠은 이때 처음으로 중첩된 형태로 배열되었다. 안쪽에 3개, 바깥에 2개가 마치 올림픽 오륜마크 같은 모양으로 중첩된 형태로 배치한 이런 배열 방식은 이후 독일 전차의 특징이 되었다.
이러한 개선에도 불구하고, C형은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전차였다. 1941년 크레타 섬 전투 이후 독일군이 공수작전을 완전히 포기한 후에는 C형은 더욱 그 가치를
잃어갔다. 결국 이들 C형들은 대부분 예비부대로 돌려졌다.
1호 전차(Panzerkampfwagen I) F형
F형은 장갑 방어력을 가능한 최대 수준으로 늘린 1호 전차 최후의 개량형이다. VK1801이라는 시험 생산 모델이었는데 21톤의 중장갑 대보병용 전차로 완전히 새로운 1호 전차를 설계하려는 마지막 시도로 개발되었다. 전면 장갑은 80mm, 측면 및 후방은 50mm, 상부 및 바닥은 25mm로 장갑이 강화되었다. 서스팬션과 엔진은 C형과 똑같았으나 변속기는 C형과 달리 전진 4단 후진 1단의 단순한 것이었다. 전체 길이는 4.38m로 늘어났으며, 폭은 2.64m, 궤도는 접지압을 줄일 수 있는 더 넓은 궤도를 장비했다. 전면에는 운전병용 슬라이드식 관측창과 잠망경이 설치되었고, 전차장용으로도 전차장용 해치 주변에 5개의 잠망경이 설치되어 주변 관측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기관총에도 조준경이 설치되었다. 장갑 강화로 인한 무게가 늘어난 덕분에 속도 성능은 C형보다 떨어져 속도는 시속 25km였고, 주행거리는 150km였다. 무장은 MG-34 기관총 2정이었다. 시제차는 1940년 6월 17일에 나왔으나 정작 생산 시기는 1942년 4월부터 11월까지였고 크라우스-마파이에서 30대만을 제조하였다.
1호 지휘전차 Sd. Kfz 265
1호 지휘전차는 전차부대 지휘용으로 개발되었다. 지휘전차를 개발하게 된 배경은 1호 전차의 승무원이 전차장과 운전병 2명 뿐이라 전차장이 사수 역할을 겸해야 해서 지휘관 입장에서는 두 가지 임무(전투 지휘 및 기관총수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지휘전차는 기존 포탑을 없애고 상부 구조물을 늘려 내부에 지휘용 물품과 FuG6 무전기 및 FuG2 무전기를 추가한 공간을 마련했다.
포탑에 장착된 기관총은 1정만 남겼고, MG 13이나 MG 34가 볼마운트에 장착되었고, 승무원도 1명(무전병)이 더 늘었다. 이 지휘전차용 차체는 1호 전차 B형이 기본이 되었으며, B형보다 중량은 5.9톤, 높이는 1.99m로 높아졌다. 장갑은 나중에 15mm 추가 장갑을 장착하여 지휘전차는 전쟁 초기 모든 기갑부대에 배치되어 활약했으나, 1942년에는 대부분 보조 임무로 돌려졌다.
총 190대가 지휘전차로 개조되었는데, 크루프사가 A형에서 개조한 지휘전차는 6대에 불과했고, 나머지 184대는 다임러-벤츠사가 B형을 개수한 것이었다.
대전차 자주포형(Panzerjager I)
1호 대전차 자주포(Panzerjager 47mm PaK)로 알려진 이 버전은 독일군이 처음으로 시도한 장갑 대전차구축전차다. 기존 회전식 포탑을 제거한 자리에 체코제 47mm 대전차포를 탑재하고 장갑판으로 고정식 전투실을 탑재한 것이다. 47mm 대전차포는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면서 노획한 제품으로 기존 독일군의 PAK 36 37mm 대전차포보다 성능이 우수했다. 포를 둘러싼 장갑판이 14.5mm로 두꺼운 편이었지만, 위나 뒤는 뚫려 있어서 방어가 전혀 안되었다. 포 자체는 -8도에서 12도까지 부양각과 35도 각도로 좌우로 선회할 수 있었다. 주포용으로 86발의 포탄을 탑재했다. 성능은 B형과 유사했으나 6.4톤으로 더 무거워졌고 길이도 2.25m가 더 늘었다.
1940년 프랑스 서부전선 521 자주대전차포대대(panzerjäger abteilung sfl 521) 47mm 대전차포 탑재 1호 전차 B형(Panzerkampfwagen I Ausf B) 대전차자주포( Panzerjäger)
체코(Czech)제 47mm 대전차포 탑재 자주포
150mm 보병포 탑재형 slG33 자주포(Sf)
A형보다 큰 B형 차체는 포탑을 제거하면 더 큰 화포를 탑재할 수 있었다. 이 점을 이용하여 150mm 중보병포를 탑재한 자주포가 sIG 33이다. 이 거대한 포(mammoth piect)는 상대적으로 구경이 짧아서 차량 높이를 2.8m로 높였을 뿐만 아니라, 폭도 2.06m로 늘린 상부구조물에 겨우 맞았다.
포가 탑재된 전투실의 장갑은 겨우 10mm였으며 1호 대전차자주포처럼 전면과 측면만 방호되었다.중량이 8.5톤까지 늘어난 결과, 차체에 과도한 하중을 가해 큰 성공작은 아니었다.
1940년 5월 프랑스 쉘부르를 포격하는 150mm 보병포탑재 1호 자주포.
1940년 2월, 일선에서 물러난 구형 B형 전차 38대를 알케트사가 개조하여, 6개 자주중보병포 중대로 편성되어 기갑사단이나 기갑군단 직할로 1943년까지 운용되었다.
보병과 함께 전진하는 150mm 보병포탑재 1호 자주포.
sIG는 25도의 선회각도와 -4도에서 75도의 부앙각을 가졌으며, Rblf36 조준경을 장착했다. 포탄은 차체에는 고작 3발만 탑재가 가능했던 관계로 별도의 하프트랙이나 역시 1호전차를 개조한 탄약수송차에 의존했다. 포의 크기가 너무 커서 전투실에는 3명의 승무원이 탑승했으며, 2명이 별도의 탄약수송차에서 포탄 및 장약을 담당했다. 이러한 탄약 보급 방식은 현대에도 마찬가지다. sIG 150mm포는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 더 큰 차체에 탑재된 후에는 성공적으로 운용되었다.
20mm 대공포 탑재형
폭파전차(Ladungsleger)
B형 전차의 후부 엔진 데크에 폭발물 개조 키트를 설치하여 요새화된 방어 거점이나 장애물에 폭탄을 설치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 전차는 기갑부대가 아닌 3개 기갑공병중대로 편성된 공병대대의 3중대에서 10대를 수령하여 운용했다. 소방차의 사다리처럼 접히는 형태의 긴 기계팔에 폭탄이 얹혀져 있고, 사용 시에는 팔을 조정하여 폭파지점에 폭탄을 올려놓고 안전한 곳으로 후퇴하는 방식이었다. 폭탄은 지연신관이 달린 50kg나 75kg 의 것이 사용되었다.
출처 : https://blog.naver.com/yumiun/220304310807
게시물을 평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