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재밌는 얘기 하나 해주마. 어쩌면 무서운 얘길 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른들의 말이란 들어도 손해 볼 것이 없는 것들이지. 이 할아비가 꼭 너 만할 때의 일인데.... 어쩌면 더 어렸을 수도 있고. 우리 유다 같이 늠름하진 못했단다.”
1941년. 봄의 기운은 정원에 있는 인공 연못을 따라 퍼져 있다. 두 줄 무늬의 편평하고 굵은 나무가 연못가에서 경계를 이루고 있고, 그 위로 방금 떨어진 사쿠라 꽃잎이 떨어져 있다. 직사각형의 연못 위에는 꽃잎들이 떠다니고 있고, 가끔 잉어의 움직임에 실려 다녔다.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버팀목은 짙은 갈색을 띠고 있다.
연못에 빠진 구름을 잡으려 손을 넣는다. 출렁거림과 차가움이 손을 움츠리게 만든다.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입혀주신 검은 정장 가슴에 손을 닦는다. 처음 입을 때는 더러워질까봐 걱정했지만, 여기 까지 오는 도중에 그런 생각을 계속 담아 두기엔 내 머리가 작았다. 허리를 조르고 있는 끈이 답답했으나, 어머니가 풀지 말라고 한 것이 기억나 답답해도 그냥 놔둔다.
키가 크고 폭이 좁은 나무들이 연못을 감싸고, 그 뒤에는 대나무로 만든 담장이 보인다. 나무들 때문에 해를 못 봐서 그런지 대나무 군데군데가 까맣다. 청초한 느낌과 단아한 느낌 사이로 썩어 문드러진 색이 파고든다. 짙은 냄새가 촛농 떨어지듯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는데, 그것이 짙은 색의 나무 냄샌지, 대나무 냄샌지, 큰 마당 쪽에서 피어오르는 향냄샌지는 잘 모르겠다.
갑자기 하늘을 가리고 있는 나무들이 무서워져 큰 마당으로 뛰어 간다. 뛰어가자 뒤에서 잡으러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등이 오싹해져서 더 빨리 뛴다. 마당까지 다 와서 다리에 힘이 빠졌다. 어머니의 기모노 속에서 웅크리고 앉는다. 어머니는 나를 들어 안는다. 어머니의 체온이 내 살 속으로 스며든다.
온통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뿐이고, 다들 말소리가 작다. 대나무 문으로 스님 한 명이 들어오고 사람들은 모두 침묵한다. 어머니는 나를 내려놓는다. 스님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이내 지겨워져 석등에 올라탔다가 어머니의 눈치를 보고 다시 내려간다.
오줌이 마려워졌다. 할아버지의 집에 자주 온 터라 화장실의 위치는 잘 알고 있다. 큰 마당 오른 쪽으로 건물을 따라 돌면 나무로 지어 놓은 화장실이 나타난다. 할아버지 집은 우리 집보다 훨씬 커서 어디를 가려면 늘 뛰어다녀야 했다. 화장실은 어두웠지만, 짙은 나무 냄새가 벽을 따라 흐른다.
일을 보고 나오는데 화장실 옆쪽으로 보이는 방의 장지문이 살짝 열려 있다. 문이 닫혀있거나 아예 활짝 열려 있거나 했으면 그곳으로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약간 벌려진 입처럼 그 속에서 숨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 건너의 어둠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나도 여기 온 목적이나 분위기 따위는 쉽게 잊고 호기심을 끄는 곳으로 향한다. 얇은 모래 위로 내 발자국 소리가 나고, 그 발자국 소리에 스스로 놀란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바라보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자주 앉아 계시던 의자위에 참새들이 재잘거리더니 이내 날아가고 다시 정적이 찾아 든다.
조금 무서워져 도망치듯 방쪽으로 다가가 문을 연다. 문은 무거워 보이는 데도 살짝 밀자 스스륵하고 조용한 소리를 내면서 미끄러진다.
방은 어둡고 서늘하고 축축했다. 병풍이 맞은편으로 내려다보고 있고, 수많은 글자들이 박혀 있다. 장지문 사이로 새어드는 빛이 다다미를 비추고 있고, 다다미 끝 쪽에 커다란 나무 상자가 놓여 있다. 나는 문을 닫고 병풍 옆에 섰다. 빛은 아슬아슬하게 장지를 통과하고 뿌연 공기 속에 사라졌다.
호기심과 무서움 속에서 갈등이 계속 일어났고, 결국엔 호기심이 무서움을 몰아냈다. 문을 닫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커다란 나무 상자 안에는 할아버지가 누워 있다. 누린 냄새를 풍기고 있는데 살색이 한 달 전에 놀러왔을 때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코와 입은 솜으로 막혀 있고 눈은 감겨있다. 할아버지가 이제는 숨도 쉬지 않고, 보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개념은 내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단지 할아버지 집에 놀러 올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만 걱정이 된다.
손가락을 천천히 할아버지의 얼굴에 가져간다. 윤기 없는 피부는 아침에 어머니가 로션을 발라준 내 피부와 아주 다르다. 감겨있는 눈을 자세히 관찰한다.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니 이상한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얇은 피부 안에 숨어있는 눈이 살짝 움직이는 것 같다. 아니 착각일 것이다. 죽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아무 것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다른 세상으로 가셨다고 했다. 나보고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며칠 동안 어머니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화장대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일이 많았고, 문 밖으로 울음소리가 새어나오는 일이 많았다. 어쨌든 어머니를 슬프게 한 할아버지가 미웠다.
‘시체가 되어버린 거야.’
옆집에 살던 나보다 두 살 많은 형이 그랬다. 시체라는 말은 죽었다고 말하는 것보다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어떤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반응이 덤덤 하자 형은 귀신이 되어버린 거라고 다시 말했다. 저고리를 꽉 조여 맨 바지 위로 튀어나온 배를 때려주고 싶었다. 할아버지를 욕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며칠 전에 딱지를 잃은 것 때문에 화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뚱뚱한 배와 쭉 째진 눈이 마음에 안 들기 시작하더니, 이상하게 눈물이 나왔다. 처음엔 눈앞에 고이는가 싶더니 소나기처럼 퍼붓는다. 집으로 뛰어가는 내 등에 대고 그형은 ‘귀신!’하고 소리쳤다.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있자 그 형 말이 떠올랐다. 귀신이 된 것인가? 하지만, 내 상상 속에서 귀신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늘 여자였고 검은색 기모노에 머리가 아래로 흘러내려져 있었다. 사실 이것은 동네에 미친 아주머니의 모습인데, 나는 귀신의 모습을 아주머니와 동일시했다. 그 아주머니가 나타나면 아이들은 모두 도망쳤고, 내게도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 커다란 개보다 더 무서웠다. 집에서 산 쪽으로 가다보면 검고 커다랗고 크게 짖어대는 개가 있었는데, 그 개가 사람을 물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어도, 먹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 아주머니는 아기를 먹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얘기를 옆집 형에게 들었던 날, 악몽에 시달리며 잠을 설쳤다.
긴 복도를 따라 스님의 중얼거림이 들려온다. 복도로 통하는 문을 살짝 열어 고개를 내민다. 소리만 들릴 뿐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긴 복도는 시간이 정지해 버린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든다. 어머니가 찾으러 올 때까지 숨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얼마나 기다려야 할 지 모르는 일이다. 예전에 동네에서 숨바꼭질을 하는데 게임 도중에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풀숲 뒤에 숨어있었고 결국 감기에 걸렸다. 여기에 숨어 있다고 감기에 걸릴 것 같진 않았는데, 이상하게 집안에 아무도 없는 느낌이 들었다. 다들 숨바꼭질하느라 숨어버렸나? 아니..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이젠 스님의 중얼거림도 들리지 않는다.
뒤에서 소리가 난다. 병풍이 있는 쪽? 아니다. 뭔가를 문지르는 소리가 할아버지가 들어가 있는 커다란 나무 상자에서 들려온다. 시야가 좁아지면서 나무 상자에 맞춰진다. 나무 무늬는 내 시선을 따라 흩뜨려 졌다가 다시 모이고 둥글게 변했다가 다시 가지런한 선으로 변했다. 아니, 머리가 어지러워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께 감기에 걸려서 하루 종일 울었는데, 아직 완전히 나은 것이 아닌 것 같다. 나무 무늬를 보고 있으니 현기증이 났다.
스르륵.
예민해진 귀가 소리를 잡아낸다. 하지만, 방향을 잡아내지는 못하고 눈은 방 이곳저곳을 빙글빙글 돌리며 바라본다. 오쇼가쯔 때, 사람들이 집에 들어와 손을 비비던 소리 같기도 하고, 마쯔리 때, 커다란 가마에서 들려오던 소리 같기도 하다. 아니면 커다란 쥐가 천장에서 나무를 긁어대는 것일 수도 있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바닥에 신발을 끄는 소리일 수도 있다. 어머니도 내게 신발을 바닥에 끌며 다니지 말라고 자주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스스륵.
다시 소리를 듣는다. 분명 내 신발 소리는 아니다. 내 다리는 분명 바닥에서 움직이지 않았고, 눈알만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으니, 소리가 났으면 눈에서 나야 하는 것인데, 눈에서 소리가 날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 어디서 난 것일까.
시선이 병풍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다가 금방 썩어버릴 것 같은 천장에 잠시 멈춘다. 장지문으로 새어나오는 빛을 따라가다 나무 상자에 걸쳐 있는 손으로 향한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숨을 가쁘게 쉬느라 말이 새어 나올 틈이 없다. 다리는 이미 내 감각을 벗어난 것처럼 땅에 붙은 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무 상자에 걸쳐진 손이 천천히 움직인다. 손에 검은 반점들은 제각기 눈이 달린 것처럼 나를 바라본다. 주름지고 얇은 피부가 나무 무늬처럼 움직이고 있다. 다섯 개의 손가락이 나무 상자를 꽉 쥔다. 나무 결을 확인하려는 듯이 얇은 손가락이 제각기 움직이기 시작한다. 결을 따라 긁는 소리가 퍼진다.
다시 손가락들이 나무 상자 모서리를 꽉 잡더니 할아버지의 가슴부터 위로 올라온다. 머리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뒤로 젖혀진 상태다. 쭈글쭈글하고 누런 입술이 목을 따라가고 입은 벌어져 있다. 벌어진 입으로 솜이 삐져나와 입에서 하얀 연기를 내뿜는 듯한 모습이다.
앉은 자세가 될 때까지 상체가 올라왔으나 얼굴을 지탱하고 있는 목은 힘이 없다. 얼굴은 목에 매달린 커다란 구슬 같은 모양이다.
“그 때, 나는 너무나 무서워서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단다. 나는 할아버지의 등이 보이는 방향에 있었는데, 할아버지의 얼굴이 뒤로 젖혀져 그 눈이 나를 향하고 있었지. 유다야, 너는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남쪽 지방에서는 생선이 썩지 말라고 기름을 발라준단다. 특히 생선 눈깔 쪽에 기름을 흠뻑 묻혀 주는데, 할아버지의 눈이 딱 그 모양이었어. 온몸이 말라 비틀어졌지만, 눈물샘에서 끈적끈적한 액체가 피어오르는 듯 했지.”
할아버지는 눈을 계속 돌리며 무언가를 찾는 듯 했다. 아니면, 죽어 뻑뻑해진 눈 때문에 운동을 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머리털이 거의 없는 뒤통수가 등에 닿아 있어, 목은 길게 늘어난 것 같다. 나는 쾌쾌한 냄새를 피하려 손으로 코를 막았으나, 냄새는 코로 들어오지 않고,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속이 매스껍고, 구역질이 났다.
할아버지의 눈이 정지한다. 눈이 멈춘 자리에는 내가 서 있다. 잠시 눈이 마주친다. 예전에 인자한 모습으로 나를 보던 눈과는 많이 다르다. 눈동자가 더 작아진 것 같기도 하고, 더 커진 것 같기도 하다. 목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더니 뒤로 젖혀진 얼굴이 천천히 재 자리로 돌아간다.
나무 상자의 끝을 잡던(나중에서야 그것이 관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손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솜을 끄집어낸다. 커다랗게 벌린 입으로 솜들은 계속 튀어 나온다. 상당히 깊이까지 솜이 들어가 있는 것 같고, 양도 많은 것 같은데, 구역질을 한번도 하지 않는다. 솜은 나올수록 누런 물에 젖어 있고, 더러워 보인다. 할아버지의 손가락의 주름 사이사이로 솜에 묻어 있던 물이 파고든다. 나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 모습을 바라본다.
솜을 거의 다 끄집어 낸 할아버지는 천천히 일어선다. 몸의 한 부분에는 힘을 주고, 한 부분에는 힘을 완전히 뺀 것처럼 균형이 이상하다. 입고 있던 하얀 옷도 어깨 아래로 흘러내려 오른쪽 가슴의 얇은 피부 아래의 뼈 모양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몸을 다 일으키고, 발 하나를 나무 상자 밖으로 끄집어낸다. 얼굴은 조금 전 뒤로 젖혀졌던 것과는 반대로 이번엔 앞으로 숙여져 있다. 얼굴이 그림자에 가려져 있는데, 주름 밑은 더 어둡다. 나머지 발을 빼내자 나와 마주선 모양이 됐다.
내게 천천히 다가온다. 다리에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는다.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는데, 어떤 소리도 이 방 밖으로 새어 나갈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아있는 힘을 끌어 모아 뒤로 미끄러졌으나 이내 벽이 나를 막아섰다.
-이자와키.... 내.. 손자...
할아버지는 입술도 움직이지 않은 채 말을 한다. 고개를 조금 들고 있으나 나를 보고 있는 건지는 알 수가 없다. 한 달 전에 할아버지가 아파서 왔을 때의 목소리와 비슷했다. 내가 이상하다고 어머니에게 말했더니 병 때문에 목이 많이 상하신 거라 말씀하셨다.
바닥으로 늘어뜨렸던 팔이 내 얼굴 쪽으로 올라온다. 그만큼 할아버지의 얼굴과 내 얼굴이 가까워진다. 할아버지를 올려다본다. 누런 입술에서 액체가 계속 흘러나와 다다미를 적신다. 표정의 변화는 전혀 없고, 어디를 보는지도 알수가 없다.
방에는 커다란 내 숨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고, 할아버지의 숨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여기... 있었구나.
할아버지의 손이 뺨에 닿는다. 냉기가 뺨을 파고들고, 이상한 냄새가 코로 스며든다. 뿌리치려 그랬으나 얼굴을 잡는 힘이 셌다. 어쩌면 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일 지도 모른다. 내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이 되었으나 울음소리는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내게 마지막 남은.... 기회가...
할아버지는 아직도 입술을 움직이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손이 차가워서 그런지 아니면 방 전체가 차가운지 몰라도 온 몸이 떨려왔다.
-안타깝구나..... 힘이....
할아버지의 입술이 점점 벌어진다. 입술 아래 숨겨져 있던 이빨이 모습을 드러낸다. 다 썩어 정상인 것은 하나도 없는 듯 했다. 이빨 사이로 더러운 냄새가 뿜어져 나온다.
방은 조금 전 보다 더 어두워졌다. 구름이 껴서 그런 것 방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조차 막아 버린 것 같다.
-심장을.....
“나중에야 들은 이야기지만, 죽은 다음에 잠시 살아나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 때 아이의 심장을 먹으면 삶을 더 연장할 수 있다는 전설이 있더구나. 지금도 나이가 많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면 모르는 것이지. 혼죠 숲이라는 곳 들어 봤을 거야. 그 속에 있는 마을에서 시작된 전설인데, 그 곳에서는 예전부터 아이들을 희생해서 노인들의 삶을 연장했단다. 끔찍한 일이지.....”
할아버지는 한 손으로 내 목을 잡고, 다른 손으로 내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내 손은 저항하려 하지 않고 옆으로 축 늘어졌다. 내 웃옷을 다 벗기더니 기다란 손가락으로 가슴을 긁기 시작했다. 고통이 가슴을 파고들었으나, 벌려진 내 입은 비명을 토해내지 못했다. 할아버지의 입에서 떨어지는 누런 액체가 내 가슴을 적시고 있었고, 액체는 피부에서 새어나오는 피와 섞여 다다미 위로 떨어졌다.
내가 고통스러워하자 할아버지는 더욱 심하게 내 피부를 긁어댔다. 얇은 피부는 누런 손톱을 이겨내지 못했다. 살이 찢겨나가고 갈비뼈가 드러났으나 손은 더욱 세차게 내 가슴을 긁어댔다.
-심장을....심장을.....빨리...
할아버지의 중얼거림이 멀리서 들리는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얼굴의 검은 반점들이 서로 모였다가 흩어지고 이내 선을 이루고, 주름이 되었다. 주름 속의 어둠에서 구린내가 풍겼다.
손톱이 갈비뼈 사이를 파고 들 때, 내 입에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살려...주세요!
할아버지는 목을 잡은 손에 힘을 더 주더니 자신의 입으로 내 입을 막았다. 누런 액체가 내 몸속으로 흘러 들어오고, 어떠한 소리도 새어 나가지 못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았단다. 깨어나 보니 의원에 있더구나. 깨나자마자 토하고, 내 가슴을 보았단다. 뼈가 드러나 있고, 긴 손톱이 몇 개 박혀 있었는데, 내 가슴을 파고들기에는 할아버지의 기력이 너무 쇄하신 거지. 손톱을 지탱하고 있는 근육이 손톱을 꽉 잡아주지 못했던 거야. 나이도 많으실 때 돌아가셨거든. 유다야.... 하지만, 나는 그렇지가 않단다. 오십 둘에 죽기는 싫어. 네 심장이 필요하구나. 내가 이렇게 자세히 이야기를 해준 것도 다 너를 생각해서다. 그래... 목이 아프냐? 우리 할아버지도 이렇게 나를 잡았었지. 아무 말도 안나오고 움직일 수도 없을게다. 조금 고통스러울 거야. 그래도 나는 칼을 사용할 거니까 빨리 심장을 때어낼 수 있을 거야. 나는 미야꼬가 널 낳아준 것을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나는 아직 코에 남아있는 솜을 왼손으로 빼내고, 옆에 놓여 있는 칼을 들었다. 칼은 손자인 유다의 갈비뼈 사이를 쉽게 뚫고 들어갔다.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누런 물이 유다의 피와 섞여 다다미를 적신다.
-the end
출처 : https://www.jjang0u.com/board/view/horror/1266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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